
토지등소유자들은 통상 준비위원회를 직접 구성해 정비사업을 시작한다. 준비위원회는 협력업체와 계약을 체결하거나 정비계획(안) 입안 제안을 위한 동의서를 징구한다. 다만 준비위원회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이라 한다)상 법적 근거가 없는 임의단체이기 때문에 주민들 간 대표성이나 협력업체와의 비용 문제에 있어 분쟁이 종종 발생한다.
일례로 1기 신도시의 경우, 선도지구 공모를 위해 다수 준비위원회가 구성됐으나 불명확한 법적 지위로 인해 주민들 간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판례는 준비위원회의 경우 추진위원회 전 단계로 도시정비법의 적용을 받지 않으므로, 관계 법령의 규제를 받지 않는 토지등소유자들이 구성한 ‘임의단체’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준비위원회가 협력업체와 용역계약을 체결한 경우, 비법인사단으로서 용역비 부담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만일 비법인사단으로 인정되지 않을 경우 대표자가 개인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일까?
대법원은 ①어떤 단체가 고유의 목적을 가지고 사단적 성격을 가지는 규약을 만들어 이에 근거하여 의사결정기관 및 집행기관인 대표자를 두는 등의 조직을 갖추고 있고, ②기관의 의결이나 업무집행 방법이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지며, ③구성원의 가입, 탈퇴 등으로 인한 변경에도 불구하고 단체 그 자체가 존속되고, ④그 조직에 의하여 대표 선출 방법, 총회나 이사회 등의 운영, 자본의 구성, 재산의 관리 등 단체로서의 주요사항이 확정되어 있는 경우 비법인사단으로서 실체를 가진다고 판단한다.
이에 따라 하급심 판례는 준비위원회와 용역계약을 체결한 업체가 용역비를 청구한 사건에서, ①준비위원회가 도시정비법에 따른 어떠한 규제도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조직된 단체로서 어떤 과정이나 절차를 거쳐 설립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고, 전체 구성원의 숫자 및 인적사항이 불명확한 점, ② 규약이나 정관을 두고 있지 않으며 대표 선출 방법, 의사결정기관의 운영 등 주요사항이 구체적으로 확정되어 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는 점, ③ 위원장, 부위원장, 총무, 감사, 이사, 위원 등이 선임되어 있었으나 구성원들의 의사에 따라 적법하게 선출, 조직되었다고 볼 증거가 없는 점, ④ 다수결에 따라 업무를 집행해왔다거나 독자적으로 활동해왔다는 증거가 없는 점 등을 들어 비법인사단으로서의 실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그에 따라 대표자인 위원장이 용역비 지급 책임을 부담한다고 보았다. 이와 달리 준비위원들로 구성된 비법인사단으로 인정해 준비위원회를 상대로 용역계약의 해지와 정산을 구하라고 판시한 판례도 존재한다.
이렇듯 준비위원회는 도시정비법상의 법정 단체가 아니므로, 비법인사단으로서 권리·의무의 주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일정한 요건을 갖춰야 한다. 따라서 정비사업 추진을 위해 협력업체와 계약을 체결하고자 하는 준비위원회라면 판례의 태도를 고려해 단체로서의 실질을 충분히 갖추도록 사전에 준비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용역계약 체결 시에는 추후 분쟁에 대비하여 계약 당사자의 지위와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하고, 비용 부담 및 계약 해지 등에 관한 특약을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