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비사업 조합이 행정청으로부터 수억원의 학교용지부담금을 부과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동안 학교용지부담금의 부과는 "개발로 인한 취학 수요 증가"라는 명분 아래 관행상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은 학교용지부담금 산정 과정에서 실제로 거주 중이던 세입자 가구를 제외한 채 가구 수 증가분을 계산한 것은 중대하고 객관적으로 명백한 하자가 있는 행정처분으로서 무효라는 판단을 내렸다.
2025년 6월 26일 선고된 대법원 판결은, A행정청이 B재개발정비사업조합에 약 7억8천만 원의 학교용지부담금을 부과한 처분에 대하여, 법규의 중요한 부분을 위반한 하자가 중대하고 객관적으로도 명백하므로 부과처분은 당연무효라고 판시하였다. 이에 따라 해당 부과처분이 당연무효임을 전제로 부담금을 반환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학교용지부담금은 총 건립 세대 수에서 정비사업 시행 전 기존 가구 수와 임대주택 가구 수를 제외한 나머지 부과 대상 가구 수를 기준으로 산정하고 있는데, 이 사건에서 쟁점이 된 부분은 '정비사업 시행 전 기존 가구 수'의 산정 방식이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B조합은 정비사업을 통해 총 1,531가구를 신축하는데, A행정청은 임대주택 294가구, 기존 가구 수 1,077가구를 제외하면 160가구가 증가한다고 판단해 이에 대한 부담금을 부과하였다. 이 과정에서 교육부가 제시한 ‘정비사업 관련 학교용지부담금 부과 해석례 안내’에 따라 기존 가구 수를 산정함에 있어 실제 거주하고 있던 세입자 가구 일부를 제외한 것이다.
이에 대법원은 학교용지부담금을 개발사업지역에서 공동주택을 분양하는 자에게 이를 부과하는 이유는 학교시설 확보의 필요성이 개발 사업으로 인하여 유발되었기 때문이라는 점, 정비사업 시행 결과 해당 정비구역 내 가구 수가 증가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 개발 사업분의 학교용지부담금을 부과 징수하지 아니한다는 규정 취지 등에 비추어 볼 때, 학교용지 부담금 부과대상에서 제외되는 기존 가구 수는 정비구역 내에 실제 거주하였던 가구 수를 기준으로 산정하여야 하는 바 세입자 가구 역시 기존 가구 수에 포함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정리하면, 학교용지부담금의 부과 기준이 되는 가구 수 산정 시 소유 여부가 아닌 실질적인 거주 여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바, 세입자 가구도 기존 가구 수에 당연히 포함되어야 하며, ‘정비사업 시행 전의 기존 가구 수’에서 세입자 가구를 일부 제외한 결과에 따라 학교용지부담금을 부과한 것은 그 하자가 당연무효사유에 해당한다.
이 판결에서 의미가 있는 부분은 기존 가구 수의 산정 방식을 위반한 해당 처분이 단순한 위법을 넘어서 '중대하고 객관적으로 명백한 하자'가 있어 무효라는 점이다. 행정처분에 당연무효사유의 하자가 존재하면, 행정소송법상 취소소송의 제소기간과 무관하게 언제든지 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행정처분이 당연무효인 경우 민사법원은 선결문제로 그 처분의 효력 유무를 판단하여 부당이득반환청구를 인용할 수 있다.
필자가 실제로 여러 조합을 대리하여 소기의 성과를 거둔 사건들은 모두 이의신청이나 취소소송의 제소기간 내에 제기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취소소송의 제소기간이 도과된 경우라도 그 위법성이 객관적으로도 명백하다고 본 것이 중요한 점이다. 부담금의 산정에 있어 세입자 가구를 제외하거나, 기존 가구 수를 실제보다 과소 산정한 사례가 있었다면 이 역시 향후 동일한 법리에 따라 다툼의 여지가 충분하다.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 조합이나 사업시행자는 학교용지부담금이 적법하게 산정·부과된 것으로만 믿고 안일하게 대처해서는 아니되며 정비사업 경험이 풍부한 법률전문가와 상의하여 이의신청, 행정소송 등을 통해 사업비 절감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행정청 역시 이러한 점을 충분히 숙지·반영하여 불필요한 법적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